
[2026 공익씨앗 뉴스민] 초록이음 손미희 대표
작성자 : public 작성일 : 2026.10.19 조회수 : 32
“엄마, 여기 구피가 있어.”
2023년 여름, ‘초록이음’ 대표 손미희(41) 씨는 자녀와 함께 대구 달서구 진천천을 산책하고 있었다. 아이의 말에 물속을 살펴보니 수족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대어 구피가 헤엄치고 있었다. 생물다양성 환경교육을 하며 민물고기를 공부하던 손 씨는 의아했다. 구피는 우리나라 하천에 자연적으로 사는 물고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키우던 구피를 하천에 버렸을 가능성이 컸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듬해 같은 장소에서 구피를 다시 만났다.
“2024년 시민들과 여러 하천의 생물다양성을 조사하다가 진천천에서 다시 구피를 발견했어요. 혹시나 하고 뜰채를 넣었는데 첫 조사부터 나왔죠. 구피는 열대어라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기 어려워요. 그렇다면 누군가 이곳에 버렸다는 뜻이잖아요.”
손 씨와 동료들은 2024년 4월부터 11월까지 같은 지점을 반복해 살폈다. 구피는 수온이 떨어진 11월에도 발견됐고, 모두 36마리가량을 건져냈다. 하천 아래쪽에서도 열대성 어류인 나일틸라피아가 연중 관찰됐다. 손 씨는 주변에서 흘러드는 물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면 열대성 어류가 겨울을 나거나 번식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방생’가 아니라 ‘유기’…유기어의 탄생
이 경험은 손 씨가 ‘유기어’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사람이 기르다 버렸다는 의미를 정확히 짚으려 이런 표현을 썼다. 사람들은 키우기 어려워진 물고기를 물에 놓아주면 살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족관의 외래 어종은 원래 살지 않던 하천에 들어가 토착 생물과 먹이·서식지를 두고 경쟁할 수 있다. 국내 고유종이라도 서로 다른 수계로 옮겨 놓으면 그 지역 생태계에는 이입종이 된다.
다만 손 씨는 “특정 어종이 어떤 생태계 교란을 일으켰다고 단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장기간 조사와 과학적인 연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 씨는 동료들과 ‘초록이음’ 단체를 통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보다 하천에서 어떤 생물이 발견되는지 기록하고, 전문가와 연구자가 활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모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구피가 하천 생태계를 이렇게 바꿨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부족해요. 하지만 원래 없던 생물이 사람의 손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죠. 물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보이지 않으니 문제로 인식되지도 않고, 제도적으로 다뤄지는 경우도 드뭅니다.”
물고기가 작고 말이 없다는 이유로 생명을 대하는 책임도 가벼워진다. 학교 방과후 수업이나 체험학습에서 물고기와 달팽이, 자라 같은 생물을 나눠주는 일도 흔하다. 호기심으로 받아온 생물을 끝까지 돌보기 어려워지면 하천에 놓아주는 경우가 생긴다.
손 씨는 “개나 고양이는 충동적으로 사거나 선물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조금씩 자리 잡았지만, 물고기와 작은 생물은 그렇지 않다”며 “물에 풀어주면 살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버리는 행위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지적했다.
2024년 진천천에서 데려온 구피들은 수조에서 빠르게 번식했다. 난태생인 구피는 알 대신 새끼를 낳는다. 수십 마리가 수개월 만에 수백 마리로 늘었다. 초록이음은 환경 행사와 청년주간 부스에서 다시 하천에 버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은 뒤 40여 명의 시민들에게 약 100마리 구피를 분양했다.
우리 동네 생태환경을 수호하는 ‘시민과학자클럽’
손 씨의 첫 직업은 환경교육과 거리가 있었다. 대구보건대학교 임상병리과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일했다.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밤 근무를 마치고 현장으로 달려가 기름 묻은 바위와 생물을 닦았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았다. 출산을 계기로 병원 일을 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했고, 생태해설과 환경 관련 교육을 배우기 시작했다.
손 씨는 “태안에서 젓가락에 천을 감아 바위 사이의 기름을 닦았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기름에 뒤덮인 새와 물고기, 현장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며 “한동안 잊고 살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이런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처음부터 생태 쪽으로 분야를 정한 것은 아니었다. 기후위기와 자원순환 등 여러 환경교육을 해본 뒤 현장에서 직접 보고 기록할 수 있는 생물다양성 문제에 마음이 갔다. 2020년부터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의 환경교육 강사로 활동했고, 새와 수달, 민물고기 등을 관찰하며 지역의 생태를 공부했다. 현재는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서 환경교육 업무를 하며 대구대학교 대학원 환경교육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초록이음의 전신은 2023년 무렵 시작한 ‘시민과학자클럽’이다. 전통시장에서 제비 둥지를 찾고, 수달과 민물고기 등 도시 생물을 조사하던 모임이다. 환경 분야에서 일하거나 생물다양성에 관심을 둔 청년들이 합류하면서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다. 2025년 2월 임의단체 ‘초록이음 환경문화연구소’로 등록했고, 현재 구성원은 13명이다.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구성원 모두가 학술연구자는 아니다. 그러나 단체 내부의 직함과 호칭을 ‘연구원’으로 통일했다. 시민이 현장에서 발견한 생태 문제를 기록하고 전문가의 지식과 연결해,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는 환경 문제를 생활 속 언어로 전달하는 ‘중간다리’가 되겠다는 의미도 담았다.
손 씨는 시민과학의 강점도 지역에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 연구자는 조사할 수 있는 장소와 시기가 한정되지만, 지역 주민은 같은 곳을 꾸준히 관찰할 수 있다. 시민이 모은 기록이 과학자의 분석과 결합하면 한두 차례 조사로 발견하기 어려운 생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 씨는 “과학자와 함께 자료를 검증하고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렇지만 가까이에서 꾸준히 기록할 수 있는 역할은 시민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짚었다.
초록이음은 단체를 만든 직후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의 2025년 비영리공익활동스타트업 사업에 선정됐다. 지원금 300만 원으로 ‘유기어 방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민과 함께 하천을 조사하고,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유기 방생을 생명문화의 문제로 공론화하는 사업이었다.
당초에는 진천천과 동화천, 범어천, 팔거천, 신천 등 대구의 5개 하천을 다섯 차례 조사할 계획이었다. 실제로는 진천천·동화천·금호강을 비롯해 경남 밀양강과 ‘구피천’으로 알려진 경기도 이천 죽당천까지 조사 범위를 넓혀 모두 11차례 조사했다. 시민과 청년이 조사와 생태교육에 참여했고, 어린이기자단과 지역주민을 만나는 활동도 병행했다.
조사에서는 하천마다 다른 외래·이입 생물이 확인됐다. 동화천에서는 배스와 붉은귀거북이, 여러 하천에서는 배스와 블루길이 관찰됐다. 죽당천에서는 겨울에도 구피와 시클리드 등 열대성 어류를 확인했다. 진천천에서는 2024년과 달리 2025년 같은 지점에서 구피가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나일틸라피아가 11월까지 관찰됐다.
구피가 나오지 않은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조사자료를 토대로 대구시에 정책을 제안하려던 계획은 여건상 실행하지 못했다. 한 해 전 발견 기록만으로 상시 안내판 설치나 제도 개선을 요구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손 씨는 “유기어가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장소에는 방생을 막는 안내판을 설치하거나, 학교와 방과후 교육기관이 살아 있는 생물을 교구로 나눠주지 않도록 해야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캠페인에서는 유기어 제보를 받고, 조사 결과를 카드뉴스와 홍보물로 알렸다. 2025년 9월 행사에서는 시민 약 150명이 캠페인에 참여했다. 공익센터의 지원금은 조사 장비와 교육·캠페인 운영, 전문가 자문과 홍보물 제작 등에 사용됐다.
시장의 제비도 시민과 함께 기록
초록이음의 관심은 물속 생물에 머물지 않는다. 전통시장에 둥지를 튼 제비도 시민과 함께 관찰한다. 제비는 환경부가 지정한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오는 시기와 떠나는 시기, 번식 과정의 변화가 지역 기후와 생태를 이해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손 씨는 시장 상인 역시 제비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관찰해온 시민과학자라고 했다. 제비의 배설물을 받아내는 판을 설치하고 수년 동안 둥지를 지켜온 상인들은 제비가 언제 돌아오고 새끼가 언제 둥지를 떠나는지 알고 있었다. 올해 초록이음은 불로시장에 있는 제비 둥지 26개를 조사했다. 둥지가 있는 가게를 소개하는 지도와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비를 지키는 일이 상권에도 도움이 되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손 씨는 “사실 가게에 둥지가 있으면 배설물도 계속 떨어져 무척 번거롭다. 그래도 받침대를 달아주며 10년 넘게 제비와 살아온 분들이 있더라”며 “그분들이야말로 제비를 가장 오래 관찰한 시민과학자다. 생물을 보호하는 일이 주민의 희생에만 기대지 않고 가게와 시장에도 도움이 돼야 공존이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 씨는 현장에서 쌓은 기록을 더 설득력 있는 연구와 정책으로 연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 앞으로 기획과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연구자로 역할을 꿈꾸고 있다.
반면 활동을 지속할 기반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초록이음 구성원들은 각자의 수입 활동을 하며 공익활동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보탠다. 사무실을 구하려 했지만 신생 공익단체가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았다. 지원사업비로 조사와 캠페인은 진행할 수 있어도 구성원의 인건비나 조직의 일상적인 운영비를 마련하기는 어렵다.
손 대표는 “공익활동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으니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며 “공익단체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공간과 운영 기반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활동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시민의 변화다. 하천에 물고기를 놓아주는 일을 선행으로 여겼던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시장 상인은 제비의 도래일을 기록하며, 주민이 지역의 생물을 함께 지키는 장면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생물은 크든 작든 한번 데려왔다면 책임져야 합니다. 물고기를 하천에 놓는 것은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생명도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과 계속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손 씨는 지원금뿐 아니라 비영리단체 운영을 배우고 다른 활동가들과 만난 경험을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본업을 따로 둔 신생 단체였던 만큼, 워크숍과 상담은 역할과 사업 방향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유기어라는 낯선 문제를 시민에게 설명하고 참여를 끌어내는 방법도 사업 과정에서 구체화됐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찾은 캠페인 부스에서는 “그런 문제를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살아 있는 생물을 나눠줘도 받지 않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초록이음은 구피 캐릭터와 스티커, 실물 표본과 체험활동을 활용했다. 낯선 생태 문제를 설명하기보다 시민이 먼저 관심을 갖고 질문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출처: <뉴스민> 공익씨앗 6 / 초록이음 손미희 대표